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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4-03 (화) 02:40 조회 : 150
(잠언(箴言)과 다산(茶山)어록)

                              “허물고치기”

‘거만한자는 견책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잠15:12)

나는 이기적인 탐욕으로 말미암아 죄악 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왜냐하면 원래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죄악 중에 태어났으며, 죄악 된 세상에서 살며, 사탄의 끊임없는 유혹 속에서, 이젠 숙명적으로 죄악에 익숙해져서 그 안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이란 나이 태(胎)로 죄의 허물 을 겹겹이 쌓아가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도 나에게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의인은 없다’고 환기 시켜 주고 계신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畢竟)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고 일깨우신다.
내 생각대로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생명의 길인지 사망의 길인지 알 수 없어서, 항상 나의 불완전함을 경계하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옛날 우리의 훌륭한 조상들도 나의 허물고치기에 대한 충고를 말하고 있는데 그중에,
다산(茶山)정약용(丁若鏞)은 그의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허물을 고치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원문 해석)

“예로부터 성현은 모두 “개과(改過)‘ 즉 허물을 고치는 것을 귀히 여겼다. 심하게는 처음부터 허물이 없었던 것보다 오히려 낫게 여기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대개 사람의 정리(情理)란, 허물이 있는 곳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분노로 바뀌게 된다.
처음엔 아로새겨 꾸미려들다가 마침내는 어그러져 과격하게 되고 만다. 허물을 고치는 것이 허물이 없는 것보다 어려운 까닭이다.
우리는 허물이 있는 사람이다.  마땅히 급하게 힘쓸 것은 오직 ’개과(改過)‘ 두 글자뿐이다.
세상을 우습게보고 남을 업신여기며 잘난 체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기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은혜 (배품)를 품고 원한을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영예를 탐하고 이익을 사모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뜻이 같으면 한 패가 되고 다르면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잡서(雜書)를 즐겨 읽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새로운 것과 괴상한 것을 구분 못하고 자기주장만 우긴다. 이것이 허물이다.
이 같은 병통(病痛)들은 다 꼽을 수없는 허물들이다.
한 가지 마땅한 약제(藥劑)가 있으니 오직 ’개(改)‘란 한 글자뿐이다.”
 
성경속의 귀한 말씀이 항상 내게 은혜와 도전을 주고 있는데 그 속에서 상통(相通)하는 귀한 교훈을 다산에게서도 보게 된다.
다산은 말하기를, 누구나 허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다가 나중에는 눈 감아버리고 오히려 누가 뭐라 하면  외려 성을 낸다. 이것은 딱 끊어 잘라 내야 한다. ‘과단성 있게 고쳐야한다’ 라고 한다.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허물이 아예 없는 것 보다 허물을 고치는 사람이 더 귀하게 여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채근담에도
“세상을 뒤덮는 공로(功勞)도 ‘자랑 긍(矜)’자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하늘에 가득찬 죄과(罪過)도 ‘뉘우칠 회(悔)’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蓋世功勞 當不得一個矜字, 彌天罪過 當不得一個悔字 )고 고침을 중하게 여긴다.
옛날 중국의 태갑(太甲)같은 임금은 처음에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뒤에 허물을 고치고 성군(聖君)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고치는 일엔 과감해야하는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는 것보다 죄를 범하였을 때 이것을 빨리 뉘우쳐 깨달아 회개하는 것이 더 귀중한 것이다.

사람은 내게 있는 약점이나 허물을 모르거나, 혹시 알았다 해도 인정하기 싫거나, 덮어 감추려 하게 된다. 그래서 허물을 고치기가 힘든 것이다. 더구나 남에게 충고(忠告)나 지적(指摘)을 받게 되면 자존심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되고, 그래서 싫어하며 심지어 원수가 된다.
우리는 그러나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항상 인정하여야하며, 오히려 나의 실수를 깨우쳐 이야기 해주는 사람을 더욱 고맙게 생각해야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관심인데, 그렇다면 그 사람의 내게 대한 관심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는 그의 사랑에 대해서 성을 낼 수가 없다.
하나님은 이것을 야고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1:19~20)라고 일러 주신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거만한 자는 견책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잠15:12)’ 라고 일반적인 우리의 행태를 경계하시면서,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輕)히 여기는 것이고,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는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訓戒)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5:32~33)
라고 오늘아침도 나의 마음을 여미라고 훈계하고 계신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를 기뻐해야한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고  라오디게아교회의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로 상징되는, 덥지도 차지도 않은 현재를 살고 있는 오늘의 성도들에게 하시는 꾸중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 듣기를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라고 하시면서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私生子)요 참 아들이 아니라”(히12:7~8)고 징계의 중함을 가르쳐 주신다.
 나는 매일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기를 기뻐 할 뿐만 아니라 내게 충고하는 이웃이 있다면 이를 또한 고맙게 받기위해서 항상 마음을 열고 근신과 겸손으로 살아가기를 노력하려고 한다.
내 의지로는 불가능한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면서 먼저 감사의 기도와 마음을 비워 근신하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한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다산이 모함을 받아 금정 찰방(察訪)으로 좌천되어 갔을 때, 이웃에서 우연히 ‘퇴계집’을 얻었다. 거기 실린 퇴계의 편지를 매일 한편씩 아껴 읽었는데, 새벽에 한 편 읽고 오전 내내 음미하다가 점심 먹고 나서 그 아래 자신의 단상(斷想)을 적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간 글 묶음이 바로 ’도산사숙록‘이다. 이것은 삶의 자세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충고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것은  경세(警世:세상 사람들의 깨우침, 정신을 맑게 하는 이야기),  수신(修身: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  처사(處事:대인(對人) 접물(接物)의 바른 태도),  치학(治學:공부 방법과 태도),  독서(牘書),  문예(文藝),  학문(學問), 거가(居家:거처의 규모와 생활의 법도),  치산(治産:재산증식과 경제활동),  경제(經濟) 등으로 분류하여 편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