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부지런히 애를 쓰며 정신을 쏟고 애를 태우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일 뿐이다.
누에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뽕잎이 먼저 싹튼다. 제비새끼가 알에서 나오면 날벌레가 들판에 가득하다. 갓난아이가 태어나 울음을 터트리면 어미의 젖이 분비된다.
하늘은 사물을 낼 때 그 양식도 함께 준다. 어찌 깊이 걱정하고 지나치게 근심하며 허둥지둥 다급하게 오직 잡을 기회를 놓칠까 염려할 것인가?
옷이란 몸을 가리면 되고, 양식은 배를 채우면 그뿐이다. 봄에는 보리타작 때가지 먹을 쌀이 있고, 여름에는 벼 익을 때까지 쓸 양식이 있다. 그만둘지어다. 올해 내년을 위한 꾀를 세워도 그때까지 살아 있을 줄 어찌 알겠는가?
자식을 어루만지며 손자와 증손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만, 자손들은 모두 바보란 말인가?"
다산이 그의 반생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산에서 지내면서 모든 사물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보고 세상 사람들이 허둥지둥 바삐 살면서 현재의 삶을 소홀이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런 부질없는 일로 인해 진정으로 귀중한 일을 놓칠까 그의 자손에게 주는 교훈으로 보낸 글이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이치를 우리에게 이미 말씀으로 성경에 주셨음을 기억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들의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런 것들은 다 이방인들의 구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는 빈틈이 없고,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옛 속담에도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적어도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모두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라며 우리의 부질없는 염려를 하지 말도록 권고하신다.
그러면서 또한 창고에 쌓아둘 곳이 모자라 창고를 더 지을 걱정하던 어리석은 부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오늘밤에 너의 영혼을 데려가실 것이라는 경고로 책망하신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우리들은 부지(不知)중에 또 본분(本分)을 잊고 허둥지둥 살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잠5:21)고 이미 말씀을 하셨다.
얼마나 우리에게 위안(慰安)이 되는 말씀인가?
물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감나무 밑에 누어 연시(軟柿)감 떨어질 것을 바라는 게으른 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충실히 이행하며 살아야 삶이 규모 있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꿈꾸려거든 현재를 충실히 경영하여야함을 잊어서는 않된다는 전제(前提)가 있다..
그래서 잠언에는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고 하면서 항상 최선을 다해 현재의 일을 하라는 교훈이다.
그러나 우리는 왕왕 급히 할 것은 뒤로 미뤄 두고, 안 급한 일만 허둥지둥 바삐 한다.
눈앞의 삶은 제처 두고 훗날의 계획만 세운다.
큰일만 생각하며 작은 일은 소홀히 한다.
더 벌어서 쌓아두고 자손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그러면서 제 삶은 망친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몫이다. 왜 이미 죽은 내가 걱정해야 할까”라고 다산은 충고하고 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늘 오늘도 하루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매일 아침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두 팔을 벌려 감사기도 드린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과 변함없이 태양빛과, 물과 공기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이 모든 것이 돈 한 푼 들지 않았고, 노력한 번 하지 않았는데 거저 받은 것이 아닌가?
오늘 도 새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경배로 영광 드린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잠언과 시편을 읽으며 마음을 여미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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