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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불장로로 살아온 42년을 뒤돌아보며-3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4-18 (수) 06:51 조회 : 25
그렇게 완고하시던 아버님을 미국으로 보내시어 예수를 알게 하시고 나의 가족도 같이 미국으로 오게 되었지요.  이 미국은 우선 매주 교회에 안 나갈 수가 없는 환경인데다, 우리집안 최초로 예수를 전파하신 큰 누님의 초청으로 왔으니 나의 이민 생활의 시작은 교회생활의 새로운 출발과 함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한국에서 여러 번 세례를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받으실 때 같이 받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미뤄 왔던 세례도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 오자마자 늦깎이로 받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짓과 생활을 보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데 오늘에 제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먼저 사랑하시는 그 사랑과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한국에 내버려 두었다면 아마도 그냥 그렇게 살면서 예수님과 멀어져 갔을 것이고, 죽어가고 있었을 것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 늘 저의 어리석었음을 회개하며 그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모든 것이 생소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의 이민생활은 신앙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참 그때만큼 말씀이 달고, 성경공부가 재미있고, 말씀이 머리에 쏙쏙 들어 올 때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각종모임과 교육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이 되던지, 저의 미국 생활은 마치 애벌레가 꼬치에서 나와 날개를 펴듯이, 마음과 몸이 좌 악 펴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며 살았습니다.
 집을 구해도 항상 교회 근처여야 했습니다. 그 후부터 4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 까지는 나의 집은 항상 교회에서 10분 정도 내외 걸리는 거리 이상을 떠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등사기로 주보를 만들던 때였었지만 매월 교회지도 발행되었었는데, 내가 청년회를 맡았을 때는 모든 교인들이 합심해서 도우무로, 처음으로 ‘밀알’이라는 120페이지에 달하는 교회잡지를 한국에서 인쇄해서 제작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남가주 기독청년 연합회의 중앙위원이란 직책도 맡겨 저서 모든 일이 보람이 있었고 재미있었을 때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