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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불장로로 살아온 42년을 뒤돌아보며-4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4-18 (수) 06:53 조회 : 24
그러다 1975년 10월 첫 주일에 노반석 목사님이 파사디나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광고지를 보게 되었고, 넷째 매형이 시작하니까 인사차 참석을 하게 된 것이 내가 이교회에서 창립교인으로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는 너무 사람이 없어서 자리라도 채운다는 생각으로 참석 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 훈련시키셨다가 이 교회에 밖아 놓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교회를 창립하기 위한 중요한 일들을 목사님 옆에서 거들뿐이었지만.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저는 몰랐습니다.

더욱이 이민이 막 시작되던 초창기였고, 교회도 처음 시작되는 때였는지라 그 때의 목사님과 사모님의 목회는 이민 오는 가정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것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공항 픽업으로 시작해서, 아파트장만, 아이들 진학, 직장 알선, 자동차 구입, 운전교습,  DMV 데려가기, 차 고장수리 및 사고 처리, 각종 사회보장업무, 병원 데려다 주기, 통역하기, 문화 충격에서 오는 부부갈등과 싸움 말리고 상담하기, 아동 체벌(體罰) 하다가 경찰서에 뺏긴 아이 일일이 설명하고 데려 오기 등등,,,,  열거할 수없이 많은 일들이 매일 주야(晝夜)로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교회가 처리하여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것을 옆에서 보면서, 우리 집에도 몇 가정을 공항에서 데려다 며칠 또는 한, 두어 달씩 같이 지내며 도움을 드린 적도 있었지요. 
또한 그때는 복사기가 귀했고, 장만할 여유가 없어서, 주중에 주보 내용을 주시면 내가 그것을 철필(鐵筆)로 등사지(謄寫紙)에 적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등사기에 등사를 하던 시절이어서 매주 그렇게 주보를 만들던 때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우리교회는 미국장로교 의 조직교회로 창립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장로교회법에 ‘조직교회’가 창립되기 위해서는 당회가 있어야하고, 당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당시에는 노회로 부터 장로 3명을 장립하도록 mandatory로 권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공천 위원회에서 3명의 장로후보를 공천하였는데 제가 그중에 하나였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실 저는 자리를 채우려고 출석한 것이, 교회의 부족한 곳을 메우려다 떠나지 못하고 조금씩 나름대로 봉사를 하게 되었고, 새로 오는 분들이나 또는 교인들을 섬기는데 손이 모자라니 도와드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조직교회(組織敎會)를 위해 산 가브리엘 노회의 여러분들과 매주 만나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의 헌법을 배우고, 교회창립에 필요한 준비 등, 점점 깊숙이 관여하게 되고, 이렇게 하다 보니 자연히 겉으로 나타나게 되고, 처음이라 마땅한 사람도 없고 해서 공천위원들이 아마 나를 공천했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뿐더러, 장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던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참으로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