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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불장로로 살아온 42년을 뒤돌아보며-5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4-18 (수) 06:57 조회 : 28
왜냐하면, 적어도 내게 있어서 장로라고 하면,
옛날 주일학교 때 시골교회에 수염과 머리가 하얗게 쉰 할아버지 장로님이 계셨는데, 아침에 교회에 가면, 항상 강대상 앞에 앉으셔서 기도 하고 계시다가, 우리가 신발 벗고 방석위에 앉아 미끄러운 마루 위를 미끄럼 타며 앞으로 휙 가다가 너무 미끄러워서 장로님 할아버지 등 뒤를 받으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시고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렇게 늙고 인자 하신분이거나,
미국에 처음 와서부터 출석하던 독립교회의 나의 큰 매형이시자 롤 모델이던  한용택 장로님 같은 분으로, 교회 일을 모든 것보다 제일먼저 생각하시고, 아무 말 없이 솔선수범하시고, 나중 애기지만 돌아가시면서 당신의 생명보험까지도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리실 만큼 모든 것을 받쳐 교회를 섬기시는 그런 분이나 받으실 수 있는 직분 이라고 늘 여겨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재력이 있다거나, 사회적으로 지위나 명성이 있다거나, 지식도 뛰어나고, 교회에서 발언권이 세다든가, 나이도 지긋해서,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수긍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감투(?) 같은 높은 직책으로 생각되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미국 장로교회의 헌법은 장로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수집사여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러나 일반적인 정서상, 또한 한국교회의 전통상 그것을 무시 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이도 겨우 30을 넘어섰고, 안수집사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이제 겨우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막 첫사랑의 달콤함에 젖어 무조건 열정적으로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아이와 같이 철없는 신앙에 불과할 때였으니까요.
 교회는 어릴 적부터 알고 다녔었다지만 탕자처럼 튀어나가서 미국에 올 때까지 ‘가뭄에 콩 나듯’ 아쉽고 텁텁할 때에만 가끔 나가곤 했던 교회생활이 전부였고, 그러다가 미국에 이민 와서 다시 찾은 교회 생활에서 이제 겨우 그동안 함께하셨던 예수님을 깨닫고,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벅찬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 이제 고작 4년 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봐도 목사 처남이 되서 장로 시켰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그때의 저의 생각의 전부였었습니다. 
저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무시하며 며칠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