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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의 42년을 돌아보며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4-18 (수) 07:32 조회 : 115
그동안 엄마 품에 안겨서 다니던 우리 아이들이 장성해서 몇 년 후면 50줄 을 바라보고 있고, 당시에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였던 분들이 이젠 같이 늙어 가고 있다.
지난 42년 동안 수많은 분들을 만나서 그들을 섬기고 또한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격려와 사랑으로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행복한 시간을 갖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헤어지면서 받는 서운함과 그리움 때문에 가슴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위로와 사랑이, 무한(無限)한 소망과 힘이 되어 한해 또 한해 지나오다보니 벌써 여기 까지 오게 된 것 같다.

그동안 교회를 통해서 뿌려지고 성장한 교인들 중엔 여러 교회에 흩어져서 장로로, 또는 집사로, 맡기신 제단에서 충성하는 이들이 많으신데 이분들을 볼 때 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과연 진리임이 증거 되어 진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회에서 자라나고, 또는 이름 없이 평신도로 봉사하던 사람 가운데 목사가 4명이나 배출되었고,  우리교회에 부임 하셨던 전도사, 강도사들이 목사가 되신 분들도 많고, 그중에는 이름만 거론해도 알 수 있는 분들도 계신다. 
이 모든 일이 사람이 많든지 적든지 묵묵히, 주위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소명 받은 대로, 주신 능력과 은사로 충성하신 노 반석목사님의 목회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시의 우리 교회는 모아 넣는 교회라기보다는, 모아서 교육시키고, 성장시켜서, 스스로 믿음의 분량만큼 봉사하고, 헌신하고, 전도 하고, 그러다가 자기의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아서 떠나가면, 서운하고 섭섭하지만 축복하고 보내주는, 마치 훈련소와 보충대 같은 역할을 충실히 했던 목회였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아쉬움도 있었고, 목사님의 목회 방법에 불만이 있었던 교인들도 있었지만, 초창기의 이민자 들은 대개 처음 믿는 사람들이 미국 생활의 정착을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당시에는 그런 목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지상(地上)의 모든 교회는 우리 하나님의 몸 된 한 교회인 바에야 ‘내 교회만’ 이라는 배타적(排他的)인 생각을 갖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교인이 많이 모이는 것만이 부흥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은 교회는 교인이 많지 않음으로 인적자원(人的資源)이 적어서 교회를 운영하는데 불편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칫 사람위주(爲主)의,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교인들을 교육시켜서 신앙으로 성숙하도록 하는 일을 소홀이 하게 될 수도 있게 됨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