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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의 42년을 돌아보며-2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4-18 (수) 07:42 조회 : 1521
우리 교인들의 특징은 착하고 순수했었다는 것이리라.  그동안 교회를 같이 섬겼던 많은 제직들의 면면을 보면 목사님의 목회방침을 잘 따르며 순종했고, 교인들도 평소에는 신앙이 약(弱)한 것 같지만 막상 교회가 그들에게 믿음의 분량만큼 헌신과 봉사를 필요로 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큰일을 하곤 했는데,
그중에는 1979년 El Monte 소재 교회건물을 구입할 때든지, 또한 1987년 주차장 난을 해소하기 위해 교회 옆의 부동산을 구입 하던 때의 건축 헌금 모금, 학생들이나 청년회, 성가대들의 수양회 때 donation 및 그들을 위한 자원봉사, 교회수리, 청소나 페인트칠 등을 온 교인들이 합심해서 협력하던 일 등--- 때마다 일마다 어떠하던지 교회의 재정을 아끼며 몸으로, 또는 자비(自費)로 봉사하려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들이 우리 교회를 오늘에 이르게 했고 이것이 작으나마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을 줄 믿는다. 
내 기억으로는 지난40여 년 동안 교회가 재정이 부족 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만큼 채워 주셨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에서였던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교회를 거처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땀과 기도가 자양분(滋養分)이 되고 벽돌 하나하나가 돼서 우리 교회가 오늘의 40여년을 자라오게 하였다고 믿는다.

교회를 섬기는 동안  많은 분들과 만나고 해어지기도 했지만 그중에도 잊혀 지지 않는 분들도 많다.  여기에 다 기록 할 수는 없지만,  같이 살아가는 인생여정(人生旅程) 가운데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같이 씨름하는 동안 서로의 추억 속에 아름다운 만남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나도 그 어느 누구에게든지 그분의 추억 속에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 가지 두려운 것은, 그동안 교회를 떠났거나 믿음에 낙심됐던 분들 중에 혹여(或如) 나로 인(因)해 그렇게 된 분은 없었을까 걱정하며 교인이 떠날 때마다 늘 주님께 용서를 빌어오고 있다.

그런 중에도 나의 추억 속에 가장 뿌듯한 것 이 있는데,  1997년부터 전교인 성경공부의 시작이었다. 그때까지도 모든 교인들은 성경공부에 목말라 했지만 수요일저녁 밖에 없어 시간이 여의치 않는 사람은 항상 아쉬웠었든 차에 주일 예배 후에 전교인 대상의 성경공부는 예배에 출석한 교인의 거의 95%이상의 참석률을 보여주는 대 성공이었다.
예배 후 세반으로 나뉘어 공부 했는데, 그 때만큼 모두가 즐겁게 열심히 공부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성경공부를 위한 여러 모임이 교인들에게 익숙하게 되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1999년도에 ‘Santa Barbara 수양관(修養館)’에서 가졌던 전교인 수양회는 정말로 벅찬 감동의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도 전체 교인의 약 90% 이상이 참석하였다. 전에도 여러 번 수양회를 가졌었지만, 특히 초청 강사님의 영감(靈感)있는 말씀은 온 교인들 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고, 회개의  눈물 속에서 모두가 새로운 결단을 하게 하는 잊을 수 없었던 은혜의 용광로(鎔鑛爐)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귀중한 2박3일이었다.
 당시 준비위원들의 기도와 철저한 계획으로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직접 현장 답사도하고, 가격도 본인 부담으로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1년 전부터 준비하며 분납(分納) 하도록 해서 큰 부담 없도록 했으며, 그래서 어떤 이들은 휴가를 얻어서 참석하는 등 거의 모두가 참여 할 수 있었다.
또한 북방선교에도 적극 참여하여 여러교회와 합력하여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의 선교와 신학교를 세우고, 본국이나 해외에 재난 시에는 구제헌금을 보내는 등 작은 교회였지만 최선을 다해 해외선교를 하였다.
이렇게  80년도 후에는 교회안의 큰 분쟁이나 갈등이 거의 없을 만큼 화기애애(和氣靄靄)한 교회로서 지냈는데 그러다 보니, 교회는 어쩌면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어서 정체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