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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구멍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5-11 (금) 23:09 조회 : 2090
마음의 구멍
                             
사람의 떳떳한 윤리는 오직 지성(至誠;순수한 마음을 이룸)뿐이다. 거짓(邪)됨으로 말미암아 욕망(慾望)과 사정(私情)이 생겨난다. 삿(邪)됨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으니 나고 듦이 너무 빨라, 풀이 싹트고 물이 새는 것과 같다. 떡잎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도끼질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개미구멍을 안 막았다간 뚝이무너저  큰물이 져 넘친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미를 알아 조심스레 구멍을 막는다.  대문의 자물쇠를 굳게 하고,  울타리를 엄하게 두른다. 삿됨이 드나들 길을 막고 흘러들 틈을 막아버린다. 그것을 굴복시켜 녹여버리고, 싫다고 감추어서 덮지 않는다.
온갖 거짓 물러나니 하늘은 드넓은데, 성명(誠明)이 환해지고 나의 덕이 온전하다
          삿됨을 막는 잠언 - 閑邪箴(한사잠)                      다산 정약용
 
다산이 그의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교훈이다.  개미구멍에 강둑이 무너진다. 떡잎부터 제거해야 도끼 들고 설칠 일이 없다. 거짓됨이나 요사스러운 것 즉 삿됨(邪)은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못 본척하고 외면하는 사이에, 또는 거짓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이 필요하게 되어, 온갖 거짓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횡횡한다.
툭 터진 하늘처럼 시원스런 마음을 닦고 싶은가? 그렇다면 삿됨을 원천 봉쇄하라. 자물쇠를 꽉 채우고 담장을 단단히 둘러라. 순수한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의 삿됨을 막는 일이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다”(전7:29)라고 말하므로 인간의 마음속에는하나님을 떠난 후부터 언제나 삿(邪) 됨이 있게 되어있다고 일 깨워 주고 있다.
 “마음의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2)란 무엇인가?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서 나느뇨. 너의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약4:1)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 마음에 거짓(詐)이 없어야하고 삿(邪)됨(:간사하고,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럽고, 어긋남)이 없어야한다. 이로 인해 다툼이 나고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자기도 죽고 교회도 불살라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다.

또한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詭詐)한 말에서 금 할 찌어다”(시34:12~13)
야고보는 우리가 말의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실수가 아니라 의도(意圖)된 거짓과 궤사(詭詐)한 말이랴.
또 어떤 사람은 “그 입이 우유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柔)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시55:21)인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사람의 말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잠언에는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잠7:21) 하였는데 너무 알려고 하면 다치게 되어있다. 옛말에도 보이지 않는 데서는 임금도 욕한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다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뭐라 말씀하실까에만 촉각(觸角)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는 또, 삿(邪)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爲惡而外人知(위악이외인지)하면 惡中猶有善路(악중유유선로)요, 爲善而急人知(위선이급인지) 하면 善處卽是惡根(선처즉시악근) 이라”.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악(惡)을 행한 다음 다른 사람이 알까봐 두려워함은 악 가운데 아직 선(善)의 길이 있음”이니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요,
“선을 행하고 나서 급하게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그 선(善)이 곧 악(惡)의 뿌리니라”는 뜻이다. 즉,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은 위선(僞善)이요 가식(假飾)이니,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나서 목사님이나 사람들이 빨리 안 알아준다고 불평하거나, 심지어는 교회를 등지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가 이룬 귀한 일이 자칫 동기(動機)가 정당하다고 할 수가 없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누가 보든 안 보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반드시 하실 것인데, 부족한 내가 선택받았으니 얼마나 황송하고 감사한가. 무릇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모두 이러한 겸손한 마음으로 한다면 교회에서 어찌 다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를 역(逆)으로 생각하면 마음의 삿됨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삿됨에 대한 경계(警戒)를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시는데, “헛맹세를 하지 말고, 남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치 말고,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 불지 말고 은밀히 할 것이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혼자 조용히하고,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말고, 금식할 때 슬픈 기색을 내지 말것이며, 두 주인을 섬기지 말것” 등 우리의 삿됨을 구체적으로 일깨워 주신다.
 
이는 교회생활 뿐 아니라 사회활동 에서도 섬김과 봉사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과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돌아보게 하는 보석 같은 명언이지 않은가?

늘 마음을 여미고, 오늘도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들고 나의 어리석음을 채찍질 하며 되돌아보게 된다.
  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