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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족의 장점 - ii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8-08-11 (토) 14:05 조회 : 35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과 귀가 총명하지 못하더냐?  무슨 까닭에 자포자기 하려드는 게냐?
폐족(廢族)이라 그런 것이냐? 폐족은 다만 과거와 벼슬길에 꺼림이 있을 뿐이다. 폐족이 성인(聖人)이 되거나 문장가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폐족이 통재달식(通才達識)의 선비가 되는 데는 아무 거리낄 것이 없다.  거리낌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크게 유리한 점이 있다. 과거(科擧)에 얽매임이 없기 때문이다.
빈고(貧苦)하고 곤궁(困窮)한 괴로움이 또 그 심지(心志)를 단련시켜 지식과 생각을 툭 틔워주고, 인정물태(人情物態)의 진실과 거짓된 형상을 두루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

역경(逆境)은 보약도 되고 독약도 된다. 시련은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절망 속에 희망을 길어 올리고,  어떤 이는 속수무책으로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모든 역경과 시련, 절망과 좌절은 일종의 기회임을 알아야한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에서 딛고 일어서면 겁날 게 없다. 세속적인 욕망에서 놓여날 때 학문은 비로소 든든한 뒷심이 생긴다. 주저앉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절망을 받침대로 삼아 우뚝 일어서라. 공부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뚜렷이 보여 다오.        ( 정민 역주(譯註))
이것은 다산이 그의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다.
 서양의 새 문명에 눈을 뜬 선각자였던 다산은, 정조대왕의 신임을 받아, 국가의 정치와 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변화시키려다가, 정조가 독살(?)당해 죽자 노론(老論) 벽파 훈구세력들이 저들의 권력 찬탈을 위해 그때까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장하던 개혁 신진 학자들을 서학(西學)과 천주교신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모조리 잡아 유배를 보내든가 죽이던 이른바 신유사옥(辛酉死獄)을 일으킬 때, 여기에 연루되어 ,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그의 중형(仲兄)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자신은 강진으로 귀양을 가야만 했고, 사실상 그의 구대옥당(九代玉堂)의 명문 가문은 하루 아침에 폐족으로  낙인찍힌 집안이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의 형편에서 혹시 실의(失意)로 낙심될지 모를 두 아들에게 보낸 아비의 의연(毅然)한 권면(勸勉)의 편지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자기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하리란 생각에 울분으로 밤을 하얗게 지 샐 법도 하지만, 다산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자식들에게 위로와 교훈의 기회로 삼았다.
여기에 다산의 훌륭한 인품을 다시금 보게 된다.
그는 열 여덟해나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의 평생을 가시밭길 같은 고달픈 삶으로 살았지만, 그의 정신과 학문으로써의
경세(經世), 수신(修身)과 처사(處事)와 치학(治學) 등의 교훈은 길이길이 후세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형편과 같았던 나라였다.
남쪽의 월남은 경제적으로는 부유 했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최강의 무력을 가졌지만, 정치는 권력다툼과 정치보복으로  정쟁이 끊이지 않았고, 정부 관리들은 부정과 부패로 썩었고, 거리는 매일 데모와 분신(焚身)으로 날을 새고 있었으며, 있는 자들은 개인주의에 빠져 사치와 향락으로 방탕하고, 타락하여 이기적으로 자기 살 궁리만 하던 때인데 반해,
북쪽의 월맹은 어렵고 가난했었지만 다행이 그들을 이끈 사람은 호치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탁월한 국가 경영의 지도력과 또한 청렴결백((淸廉潔白)한 무욕(無慾)의 지도자로서, 그가 가진 애민(愛民)정신과 오직 국가와 민족 통일을 향한 뚜렷한 목표와 사명감은 모든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었다.
군사력이나 무기는 형편없었고,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작전과 지도자를 믿고  따르며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무장한 백성들은, 최강의 미군과 막강한 한국군의 군사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싸워, 월남전에서 결국 승리하여 베트남의 통일을 이루었다.
 
 여기서 좌우(左右)의 이념전쟁의 우열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도자의 품격과 정신이 어떠하여야만 하는가 하는 그 중요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월남국민들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은 그의 국가 운영의 정치철학을 평생 다산(茶山)의 교훈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실천했다고 하는데, 그의 책상위에는 항상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두고 읽었다고 한다.
그만큼 다산의 정신과 교훈은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그는 동서고금을 통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탁월한 정신적 스승임을 알게 된다.

 다산의 유명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새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를 비롯한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314권
등 그 外의 방대한 저서들은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 등 세계적인 석학(碩學) 들에 의해 다산학(茶山學)으로 연구되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지만 정조가 음모에 의해 독살(?)되지 않고 조선이 새로 들어오는 신문명(新文明)으로 개혁정책이 좀 더 오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었다면, 그  망국적인 100년의 세도정치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봉건주의를 탈피하고 멋진 근세(近世)적 나라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시대(時代)는 사람이 이루어 가고,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니 무얼 탓하랴 만, 한 나라의 운명이란 결국 그것을 경영하는 지도자와 따르는 백성들에 의해 굴러가게 된다.

다산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당시 변화를 수용 못하고 사리사욕과 권력다툼에만 몰두하던 정상배(政商輩)들의 아둔하고 소인배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는 것이 어찌 나 뿐이겠는가.
 
우리는 다산과 같은 귀하고 훌륭한 선진(先進)을 갖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라의 정치가나 교육자나 사업가나 신분(身分)의 귀천(貴賤), 고하(高下), 빈부(貧富)를 막론하고 일반 모든 사람들이 다산의 이와 같은 교훈과 정신을 배우고 익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이라도 교육하는 사람들은 정신 차려서  자라나는 우리의 후세들에게, 쓰레기 같은 등수(等數)경쟁이나, 이념교육 이 아닌,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품격과 올바른 정신의 인격체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에 새로운 의식의 바람을 불어 넣을 수는 없을까 꿈을 꿔 본다.

더욱이 이런 다산의 교훈을 받아 실의에 빠진 모든 한국의 국민들이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며, 새 바람이
일어나서 다시 한 번 더 이 나라가  힘찬 도약(跳躍)의 융기(隆起)를 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운 처지를 한탄하며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좌절하고 비관하는 모든 이에게 사도 바울과 다산(茶山)의 처지(處地)를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교훈으로 주는 용기와 소망의 권면이 큰 위로로 다가갔으면 한다.
나 또한, 내가 만약, 폐족(廢族)과 같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이 앞이 캄캄할 때, 사도 바울이나 다산(茶山)과 같은 선각자들의 교훈과 정신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마음에 품으며 살기를 이아침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