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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과 선악과의 비밀-6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7-07-26 (수) 23:19 조회 : 815
2). 그러면 영혼으로서의 우리의 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영혼(soul)은 육체가 아니면서 육체에 깃들여 인간의 활동을 지배하는 정신(精神)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영은 히브리어로 ‘르아흐’(ruach)와 헬라어 ‘푸뉴마’(pneuma)는 문맥에 따라 공기, 숨, 호흡, 바람, 또는 영으로 번역되는데,  ‘하나님의 영’, 곧 ‘聖靈’(Holy Spirit)에 대한 것입니다.
 헬라어 ‘프쉬케’(pshche)는 거의 대부분 ‘혼’이라고 번역되나 때로는 ‘영혼’이나 생명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영혼(靈魂)은 인간의 생명 속의 핵(核)으로 내재(內在)함으로써, 의식하고,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정신적인 면(面)인 ‘魂’과, 하나님의 임재(臨在)와 能力을 도래(到來)케 하려는 ‘靈’이 합하여진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한 인간의 무형적(無形的) 본질(本質)의 핵(核)이며 사고(思考), 의지(意志), 감정(感情)을 느끼고 행(行)하게하는 원동력이자 인간 생명의 진수(眞髓)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라고 같이 부르므로 항상 같은 단어로 알고 있지만 성경에는 영(靈)(soul)과 혼(魂)(spirit)이 분리되어 표현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엄연(嚴然)히 분리(分離)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魂은 우리 몸에 하나님이 불어 넣으신 생기(生氣)인 靈이 들어오는 통로(通路)이고, counter part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치 TV에 전기가 연결되는 것과 같이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TV에 전기가 닿으면 말이 나오고 화면이 나오게 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런데 전기를 받아서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전원을 받는 counter part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코드에 연결 되는 condenser 이지요.  이 condenser가 전기를 받아서 필요한대로 각 part들에게 power를 공급해서 TV가 켜지고 화면이 보여 지고 음성이 나오듯이,

혼(魂,spirit)인  마음에 영(靈,soul)이 통하여  영과 혼이 영혼(靈魂)으로 합쳐질 때 이것이 生氣이며, 사고(思考), 의지(意志), 감각(感覺) 等 우리 인간의 무형적인 본질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기가 TV에 공급되는 것이 우리 눈에 안보이듯이, 영이 혼과 합쳐지는 것도 우리 의식(意識)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power가 바로 TV가 켜지는 무형적인 본질(本質)이듯이, 영(靈)인 생기가 혼과 닿을 때, 인간으로 하여금 살아있게 하는 무형적(無形的)인 본질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혼이 합처진 인간이라고 반듯이 구원받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TV에 전원이 들어온다고  다 좋은 프로그램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채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방송의 질이 다르듯이 목슴이 살아있다고 모두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중에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죽을 때 영혼(靈魂)이 떠나간다고 말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영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영이 떠난 순간에 혼은 이미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혼은 영을 위해 존재하므로 영이 없는 혼만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同一是해서 얘기합니다만,
 성경에는 데살로니가 전서 5:23절에 ‘너의 온 靈과 魂과 몸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고 또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찌른다’고 말하므로 분명히 혼(spirit)과 영(soul)은 분리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구약에는 더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에덴동산으로 살아있는 생명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혼(魂)’인 그가 ‘영(靈)’이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혼이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육체가, 그 무형적인 본질인 혼(魂)이 하나님의 영(靈), 즉 생기를 받아드렸을 때 비로써 인간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생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행하며 사느냐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現像)이며, 內在된무형적( 無形的)인 생명인 영혼의 외적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할 때에만 생명이듯이, 우리인간의 육신도 본래(本來) 고린도 전서 6장 19절에 말씀대로 성령(聖靈)의 전(殿), 즉 성령을 담기위한 그릇입니다.  故로 모든 생명의 원천(源泉)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질문 할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살아있지 않냐? 고 말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고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때 생기를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범한 후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원죄로, 그 영혼은 성령에 의하지 않으므로 몸은 움직이며 목숨은 유지한다 해도 그의 영적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 범죄 한 아담이 이미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하나님을 떠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났다는 의미는 더 이상의 에덴의 주인도, 의미도 아닌 그저 육신적으로는 살아 있어서 아기도 낳고 살아가지만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그의 영(靈)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이 쫓겨난 후의 에덴동산은 이미 생명이 있는 평화와 기쁨의 즐거운 동산이 아니라, 폐허(廢墟)인 죽음의 동산으로 버려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삶은, 목숨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이미 그 생명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flower designer가 아름답게 꽃꽂이를 했다 해도 거기에 꽂혀진 꽃들은 이미 죽은 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아니하리라” 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잘 묵상하면 영혼의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그 모든 모양(模樣)은 바로 아담, 즉 인간육체(人間肉體)인 몸의 형상(形狀)이며,

 또한 이 동산은 아담이 있을 때 비로써 살아있는 아름다운 동산이듯이,
 우리 인간도 흙덩어리의 물질에 불과 했던 육체 안에 혼에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생기인 영으로 말미암아
 사유(思惟)하고 감정을 가지고 뜻을 세워서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생명체가 된 것 같은 이치(理致)지요, 허나 그것만으로는 구원과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원죄로 인해 목슴은 살아있지만 부활하신 구주 예수의 영이신 성령의 영이 계셔야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활동하고 결혼하고 하지만 인간은 相異한 부분들의 복합체(複合體)가 아닌 인간의 전체성(全體性) 즉 全人(whole body)에 비추어 이해되어야하며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이 이 에덴동산은 바로 인간의 몸의 상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