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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믿음으로 -2 (하박국을 생각한다)

글쓴이 : 정영학 날짜 : 2017-10-15 (일) 10:10 조회 : 778
대내적(對內的)으로는 BC 640년경부터 유다에는 여호와 앞에 정직한 요시야가 왕(王)의 위(位)에 올라,
 지금까지  히스기야왕의 종교개혁(왕하18장) 이후,
 또다시 가증한 악을 행하던 그의 윗대(代)인 므낫세와 아몬의 타락과 우상숭배로 황폐(荒廢)해진 나라에
 신앙회복의 대 변혁(大 變革)을 시행하고  신앙부흥운동을 일어나게 하었다.(왕하22, 23장)

대외적(對外的)으로는 BC 625년에 바벨론이 앗수르에게 독립을 선포하고 점점 강성하여지더니, BC 612년에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멸망시켰다.
그래서 요시야 왕 이후에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까지 바벨론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아직은 바벨론이 신흥국 이였으므로 이집트가 넘보게 됬다.

원래 이집트 문명(文明)과 메소포타미아 문명(文明)은 항상 패권을 다투며 싸움을 하고 있어왔다. 그런데 그 마주치는 곳이 언제나 팔레스틴지역 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흥미진진한데,
 당시의 세계정세를 보면 BC721년경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당시의 세계적인 강대국인 앗수르는 나훔의 예언대로 BC 612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된다.

 앗수르를 멸망시킨 신흥(新興)바벨론은 옛 앗수르의 중요한 도시들을 점령하며 치고 올라오다가  팔레스틴 지역을 두고 이집트와 패권다툼이 일어나게 되는데, 서로 만나게 된 그 곳이 바로 갈그미스 라는 곳에서의 전투였다.

 이집트의 바로느고가 ‘갈그미스’로 가기위해서는 수백 마일을 동북진(東北進)해야 하 기 때문에 남방 유다 땅을 지나야 한다.
그래서 이집트의 바로느고가 군대를 이끌고 북 이스라엘 영토였던 므깃도에 머물고 있을 때 남방 유다의 왕이었던 요시야가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바로느고에게 싸우러갔다가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죽는다.

 그때가 BC609년이었는데(왕하23:29, 대하 35:20~27) 성경은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악한 행위에 격노하심을 인함이라고 얘기하고 있다(왕하23:26).
 이때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哀歌)를 지었는데 예레미야애가 중에 기록되어 있는 곳이 바로 예레미야 애가4장 17절부터20절이다.

이 요시야를 죽인 후 이집트의 바로느고는 갈그미스로 올라갔고 왕을 잃은 유다는 황급히 요시야의 아들인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는다.

 바로느고는 갈그미스 전투를 치르고 나서 이집트로 내려가다가 자기의 허락 없이 세워진 왕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킨다.
그리고 그의 형 이였던 여호야김을 대신 왕으로 앉혀놓고,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잡어가게 된다.
 이 여호야김은 백성과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였던 경건치 못한 불의한 왕 이였다.

 이 하박국은 이 당시에 쓰여 졌을 것이라고 대체적으로 신학자들은 보고 있다.